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마크-노르웨이 왕국 (문단 편집) ==== [[슐레스비히-홀슈타인]] 공작령 분봉 문제 ==== 크리스티안 3세는 본래 자신의 영지인 슐레스비히-홀슈타인 공작령을 이복동생인 한스 및 [[아돌프(홀슈타인고토르프)|아돌프]]와 나누게 되었으나 이들이 아직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직접 통치했다. 참고로 어머니가 다른 형제 중 막내 동생인 프레데리크는 루터교 성직자의 길을 가도록 했다. 이후 한스와 아돌프가 성년이 되면서 AD 1544년 크리스티안 3세가 동생들과 영지를 분할하고자 했지만 본래 홀슈타인은 [[신성 로마 제국]]에 속했고 슐레스비히는 덴마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을 우려한 지역 평의회에서 반대하고 나섰다. 이에 따라 세 형제는 영지를 셋으로 나누지만 여전히 공동 정부로 묶어서 관리하고 세금 등의 수입을 삼등분하기로 합의했다. 이에 따라 세 명 모두 공식적으로 슐레스비히-홀슈타인 공작의 칭호를 사용했지만 세부적으로는 각자의 거점을 추가적으로 붙여서 한스는 슐레스비히-홀슈타인-하데르슬레우 공작으로, 아돌프는 슐레스비히-홀슈타인-고토르프 공작으로 각각 칭하게 된다. 이후 AD 1559년 크리스티안 3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프레데리크 2세가 덴마크 왕위와 함께 영지를 상속받으면서 프레데리크 이제 2세가 한스 및 아돌프와 함께 슐레스비히-홀슈타인의 공동 공작이 되었지만 AD 1580년 한스가 후사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다시 아돌프와 프레데리크 2세가 한스의 영지를 공동 상속하였다. AD 1586년 아돌프가 사망하고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2세와 동명인 자신의 아들 프레데리크 2세에게 영지를 상속시켜주면서 아돌프의 후손이 대대로 덴마크 왕과 함께 슐레스비히-홀슈타인 공작령을 공동 통치하는 홀슈타인-고토르프 가문이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. 다만 홀슈타인-고토르프 가문은 덴마크 올덴부르크 왕조의 방계 가문이면서도 영지의 통지에 대해 올덴부르크 왕조의 덴마크 왕에게 계속해서 간섭받는 것 때문에 반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장차 덴마크와 오랜 전쟁을 벌이게 되는 스웨덴과 오히려 우호 관계를 맺게 된다. 다만 비슷한 사례로써 AD 1564년 크리스티안 3세의 다른 아들인 한스가 슐레스비히-홀슈타인-손더부르크 공작이 되지만 실질적인 지배력은 없이 단순히 수입을 분배받는 것에 그치면서 별도의 방계 가문을 형성하지는 못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